한반도 해방 이후의 미 군정 시기와 한국 전쟁 시기 당시에 미군은 굶주리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 밀가루를 배급하기 시작했는데요,
미군은 밀가루를 전국에 보급하기 위해서 대전역에 커다란 규모의 밀가루 창고를 지었었습니다.
미군이 대전에 밀가루 창고를 지은 이유는 바로 대전이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라서 전국에
밀가루를 배급하기가 쉬운 물류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전역 바로 옆에 대규모의 밀가루 창고를 지은 것이고요.
아무튼 이 덕분에 대전에 사는 대전 시민들은 밀가루를 배급 받기가 매우 쉬웠고, 자연스럽게 밀가루는 대전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배고픔을 해결하기 쉬운 매우 친숙한 식자재로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대전이 밀가루 음식으로 유명해진 이유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실제로 대전은 매우 큰 규모의 밀가루 창고에서 밀가루를 가장 쉽게 배급 받은 역사가 있었다 보니까 밀가루를 이용한 각종
식문화가 매우 발달하기 시작했고, 대전에서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인 가락국수, 칼국수, 성심당의 빵이 유명해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심당의 창업주이자 현재 성심당의 대표인 임영진 씨의 부친인 고 임길순 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는데요,
대흥동 성당에서 한 신부님이 대전역 옆의 밀가루 창고에서 미군에게 배급 받은 밀가루를 임길순 씨에게
흔쾌히 내준 것을 계기로 찐빵을 만들기 시작한게 성심당의 시초가 된 역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전이 얼마나 칼국수의 도시냐면 대전에서만 무려 700개가 넘는 칼국수집이 대전에 몰려있을 정도인데요,
이는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많은 칼국수 집이 대전에 몰려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